성당 바닥이나 측랑 벽가에 놓인 무덤 앞에 서면, 누워 있는 조각상이 누구인지 궁금해집니다. 안내판에는 대개 이름이 적혀 있지만, 처음부터 그 이름이 분명했던 무덤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비문이 닳아 사라지고, 무덤이 옮겨지고, 가문이 끊기면서 주인을 잃은 무덤이 많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이름은 대부분 여러 단서를 서로 맞춰 본 결과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단서, 비문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무덤 가장자리나 판석에 새긴 글입니다. 중세 비문은 대개 라틴어로 쓰였고, 고인의 이름과 사망일, 영혼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문구가 짧게 들어갑니다. 글자 모양도 단서가 됩니다. 둥근 롬바르드체 대문자와 각진 고딕 소문자는 쓰인 시기가 대체로 다르기 때문에, 이름이 지워져도 대략의 연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비문은 발에 밟히거나 비바람에 깎여 일부만 남는 일이 흔합니다. 남은 몇 글자를 억지로 이어 붙이면 엉뚱한 이름이 나오기도 하므로, 판독이 불확실한 부분은 불확실하다고 적어 두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문장과 조각이 말해 주는 것
비문이 사라졌을 때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문장입니다. 무덤 측면의 방패나 기사상이 든 방패에 새겨진 문장은 특정 가문을 가리킵니다. 아일랜드에 정착한 앵글로노르만계 가문들도 문장을 사용했기 때문에, 문장을 확인하면 후보를 가문 단위로 좁힐 수 있습니다. 부부의 문장을 나란히 새긴 경우에는 혼인 관계를 통해 범위가 더 줄어듭니다.
조각상의 갑옷, 옷차림, 머리 모양도 시기를 알려 줍니다. 사슬 갑옷과 판금 갑옷의 비율, 여성상의 머리 장식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했습니다. 이런 양식 판단은 정확한 해를 주지는 않지만, 후보로 오른 인물의 생몰 연대와 맞는지 검토하는 기준이 됩니다.
| 단서 | 알 수 있는 것 | 주의할 점 |
|---|---|---|
| 비문 | 이름, 사망일, 신분 | 마모, 후대의 재각인 |
| 문장 | 가문, 혼인 관계 | 같은 가문 내 여러 인물 |
| 양식·복식 | 대략의 제작 시기 | 지역 공방의 보수적 경향 |
| 문헌 기록 | 매장 장소, 유언 내용 | 기록과 실물의 불일치 |
기록과 맞춰 보기
후보가 좁혀지면 문헌으로 넘어갑니다. 유언장에 특정 성당이나 예배당에 묻어 달라는 요청이 남아 있으면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수도원의 기일 명부, 연대기, 후원 기록도 도움이 됩니다. 17세기 이후 골동품 연구가들이 남긴 스케치와 필사 기록은 지금은 사라진 비문을 전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덤은 생전에 미리 만들어지기도 했고, 성당 개축 때 자리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기록상의 매장 위치와 현재 위치가 다르다고 해서 곧바로 다른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 비문의 판독 가능한 글자와 추정한 글자를 구분했는가
- 문장이 가리키는 가문 안에서 후보가 여럿인지 확인했는가
- 조각 양식의 연대와 후보의 생몰 연대가 맞는가
- 무덤이 이전되거나 재조립된 흔적은 없는가
안내판의 이름은 믿어도 되나요?
대부분 근거가 있지만, 오래된 추정이 그대로 굳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근거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주인을 끝내 모르는 무덤도 있나요?
네, 많습니다. 그런 경우 연구자들은 제작 시기와 신분 정도만 밝히고 이름은 비워 둡니다.
결국 무덤의 주인을 밝히는 일은 단서 하나하나의 무게를 재고, 서로 어긋나는 곳을 정직하게 남겨 두는 작업입니다. 다음에 성당에서 누워 있는 조각상을 만나시면 방패의 문양과 가장자리의 글자를 먼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무덤 측면의 인물 조각에 관해서는 이전 글 「무덤 상자 옆의 작은 인물들」에서 더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